코펜하겐에 있는 이 기숙사에 너무 반해버렸습니다.
이런 기숙사에 머무르면, 공부도 잘되고 창의적인 생각이 팍팍 떠오를 듯 ^^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도 매우 인상적이네요.
구본준의
만만한
건축
① -동서양이
만난
동그란
기숙사
# 콘크리트와 나무, 기숙사와 원의 만남
사람들이 모이면 무슨 모양일까요?
잔디밭에 친구들끼리 모일 때 세모꼴로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겠죠? 네모꼴로 모일 일도 없습니다. 각잡고 모이는 것은, 군대와 매스게임뿐이죠. 누구나 자연스럽게 모이면 동그랗게 둘러앉습니다. 가운데 공간엔 음식이라도 놔두고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둥글게 모입니다. 기숙사는 어떨까요? 기숙사 방들이 동그랗게 모인다면 말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방도 동그랗게 모여 이야기를 나눌 것 같은 그런 기숙사가 있습니다. 바로 이 기숙사입니다.
커다란 케이크같은 저 건물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티에트겐 학생기숙사입니다. 2005년에 지었으니 아직 따끈따끈한 새 건물에 가깝죠. 저래 뵈도 지어지자마자 세계 건축계에서 중요한 현대건축 작품으로 인정받은 걸출한 기숙사입니다.
저 건물의 모양은 취향에 따라 아름다울 수도 있고, 그냥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일단 독특하긴 하지요. 무조건 건물을 동그랗게 짓는다고 독특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그란 건물, 실제로는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건물이 동그랗다는 것은 원래 좀 비현실적이지요. 저 건물은 척 보기에도 무조건 모양 내고자 동그랗게 한 건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뭔가 정감어리고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건축물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에는 일단 그 모양새보다도 그 속에 담기는 생각, 그러니까 `컨셉'이 중요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건축은 `예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용 기계'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양으로 승부를 하려면 건물이 아니라 조각이나 기념비로 해야됩니다.
그 속에 사람이 살기 때문에 거주자를 위해서 어떤 생각을 건축으로 펼치느냐가 건축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럼 저 기숙사는 어떤 생각을 담았을까요?
앞서 말한대로 동그랗게 모여서 소통하는 기숙사, 생활하는 학생들을 위한 공공 공간, 공동 공간을 활용하는 기숙사를 지향했습니다. 저 동그란 건물 가운데는 모두의 마당입니다.
저 기숙사는 360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360명 학생들이 잘 꾸민 마당에서 학생들은 즐겁게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책도 읽습니다. 기다란 학교 건물처럼 지은 기숙사와는 그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기숙사가 아니라 작은 마을 같지 않습니까?
건물은 자세히 보면 다 하나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6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6개 동이 계단과 연결 통로로 자연스럽게 하나처럼 이어집니다.
그런데, 저 안마당 사진을 보니 각 방 불빛이 훤해서 안에서 뭐하는지 다 들여다보이는 것 아니냐 걱정이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건축가는 알아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건물 안마당쪽으로 향하는 공간은 모두 공동 공간입니다. 부엌이나 독서실, 휴게실 등입니다. 학생들의 개별 생활공간은 건물 바깥쪽을 향하도록 해서 서로 노출 될 일이 없도록 했습니다.
저 건물이 무엇보다도 좋은 평가를 받은 부분은 저런 구조로 건물과 그 속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생활 모두에 역동성을 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재료 사용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딱딱하기 쉬운 콘크리트 건물에 나무를 적절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부드럽고 자연스런 분위기를 연출한 점입니다. 그래서 저 기숙사를 설계한 건축가 보예 룬드가르드와 레네 트란베르그는 덴마크의 `트래피리센'이란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나무상'이라고 하는데 나무를 잘 쓴 건물에게 주는 상인가봅니다.
좋은 건물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디자인이 화려하거나 희한한 건물은 아닙니다. 살기 좋게 열심히 만든 건물이 최선입니다. 남들 보기엔 멋져도 살기 불편하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그리고 기숙사처럼 제약이 많은,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건물을 저렇게 유쾌하게 짓기란 쉽지않습니다. 그래서 저 건물은 2005년생 핏덩어리인데도 유명해졌습니다.
# 건축은 윤회한다-서양과 동양의 만남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같은 생각들은 서로 공명하고 이어집니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티에트겐 기숙사는 다른 건축물에서 영감을 따온 건물입니다. 건축가들이 저 건물을 지을 때 참고한 건물은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중국, 그것도 중국의 변방인 남부, 도시도 아닌 시골의 집단주택이었습니다. 바로 이 마을 집들입니다.
저 건물들은 중국 `하카(Hakka-客家)족'의 전통 집입니다. 영어로 `하카'로 알려진 객가는 중국 남부 푸젠성과 광동성에 주로 사는 한인들입니다. 지금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화교들의 상당수가 바로 이 하카족들입니다. 중국 내부에서도 두드러지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들 출신이 허다하다고 하는군요.
이 객가가 또한 높이 평가받는 것이 바로 이 건축물입니다. 이 동그란 집단가옥을 토루라고 하는데, 독특한 것은 집단주택이란 점입니다. 명나라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특이한 건축입니다.
원래 우리에게 친숙한 중국의 보편적인 살림집은 위에 그림에 있는 `사합원'이란 네모난 집들입니다. 이 네모집들은 저 토루처럼 여러 가족이 모여사는 공동주택이 아닙니다. 당연히 한집이 사합원 하나씩 짓고, 대신 다닥다닥 붙어서 살지요.
이렇게 사합원들이 밀집해서 생긴 좁은 골목길이 이어지는 동네를 `후통'이라고 합니다. 후통은 중국의 독특한 건축 풍경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런데 이 후통이 최근 급속도로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일부는 우리 인사동이나 가회동 한옥들처럼 괜찮은 카페 등으로 개조되어 변신하기도 합니다.
좌우지간 이 후통과는 전혀 다른 저 토루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 구조를 보시지요.
가장자리 원형 건물 가운데에는 저렇게 공동 시설물이 들어갑니다. 가운데 공간은 주민들이 축제 등을 벌이는 커뮤니티 센터의 기능을 합니다.
저 토루가 생기게 된 것은 당연히 따로 따로 사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토루의 생김새가 그런 필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바깥 벽을 보면 창문이 거의 없고 구멍 정도만 보입니다. 바로 적들과의 싸움에 대비한 방어의 필요성이 토루라는 독특한 건축 문화를 낳았습니다. 토루는 아래를 깊게 땅속으로 파서 땅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오는 적에도 대비했고, 대문 위에는 물을 담아 화공 대비 설비를 했다고 합니다.
이 토루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토루들은 난징 일대에 모여 있는데, 미국 위성이 저 동그란 토루들을 원자로로 오해해서 미국 베이커 국무장관이 직접 방문해 확인까지 했다는 겁니다. 바로 이 토루들이 오해를 받았던 난징 토루들입니다.
중국의 문화유산인 저 토루들은 그 구조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
요즘 왠만한 아파트들보다도 모양만큼은 멋져보이지 않습니까? 저 아름다움에 많은 서양 건축가들이 반했고, 그래서 저 멀리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현대판 토루라고 할 수 있는 티에트겐 기숙사가 들어서기도 한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저 티에트겐 학생 기숙사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 그리고 건축의 아이디어는 윤회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토루처럼 아름답고, 그 생각도 근사한 기숙사의 아름다운 밤 풍경 하나 더 소개합니다.
# 기숙사, 예뻐져서 반가워
사실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그동안 기숙사에는 큰 돈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건축적으로도 대단한 기숙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런 공공건물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그 미학적인 측면도 중요하게 취급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세계적으로 기숙사가 중요한 건축의 분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요즘 등장하는 유명 건축물 중에는 기숙사들이 상당합니다.
최근 기숙사로 높은 평가를 받은 외국 기숙사를 하나 들자면 토론토대 대학원 기숙사가 있습니다. 개성적으로 현대건축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주목받은 기숙사가 있습니다. 기숙사로는 드물게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수상한 배재대 기숙사입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좋은 작품을 줄줄이 발표해 요즘 한국 건축계에서 가장 바쁜 작가가 된 유걸씨의 작품입니다. 새로 짓는 서울시청 건물의 설계자가 바로 유걸씨입니다.
▲ 사진=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배재대는 새로 짓는 학교 건물들을 모두 유걸씨의 작품으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저 기숙사에 이어 다른 건물들도 주요 건축상을 받았을 정도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좋은 콤비를 이룬 드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 사진=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저 기숙사는 너른 내부 공간이 특징입니다. 학생들의 평을 보니 기숙사 같기도 하고 콘도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주 다른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학교 기숙사와는 다른 `포스'와 `분위기'가 있다며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여러분 보시기는 어떤가요? 대한민국에 배재대와 티에트겐 기숙사 못잖은 아름다운 기숙사들이 많이 들어서서 학생들이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본준 기자 http://blog.hani.co.kr/bonbon/